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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없이 미래도 없다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30612_wff.html


과거 없이 미래도 없다

세계미래포럼. 2013.06.12.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최근 문화재청과 함께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문화재 등록조사를 진행했다. 문화재 등록 후보로는 국내 자동차산업을 이끈 현대자동차의 포니1을 비롯하여, IT분야의 TDX, 이만영 박사의 아날로그컴퓨터 3호기, 삼성 64K DRAM, 금성사의 국내 최초 라디오 TV 냉장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화재는 실물이 있어야 등록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들 제품이 존재하는지 현장에 조사를 나갔는데, 아쉽게도 실물을 보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포니1의 경우 40년도 안 된 제품이지만 실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 몇 대 남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보니 현대차도 네델란드에서 포니1을 역수입해서 울산박물관에 기증해야 했다.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에서도 자기 차를 보관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독일 아우디 박물관에는 양산 1호차를 포함해 아우디 전신인 호르히 자동차 시절의 1899년 제품부터 전시되어 있다.

자동차 산업처럼 IT산업 분야도 유물 보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IT강국을 이끈 중요 제품 중 하나가 세종1호(KIST 500), TDX(완전자동전자교환기)와 같은 제품인데 이들 제품은 현재 행방불명이다. TDX는 한국 정보통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쾌거다. 만성적인 전화 적체를 해결해야 하고 88올림픽을 위해서 1981년에 TDX 개발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이 전화 도입 80년 만에 처음으로 기술개발 및 통신 독립을 이루어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은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장이던 서정욱 박사가 TDX 개발단장을 맡아 개발을 맡아, 마침내 국내 최초의 전자교환기인 TDX-1을 1984년 4월 25일 개발해 발표하고, 1986년 3월부터 TDX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정보통신의 역사에서 최초라 불러도 손색 없는 정보통신 독립이 이루어진 셈이고 TDX 개발을 통해서 축적된 기술과 인재들은 향후 CDMA 등 IT강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TDX 도입으로 전화 적체 현상도 빠르게 해소되기 시작했고, 서비스 시작 1년 반 만인 1987년 9월 30일에는 1000만 회선을 돌파하여 1인 1가구 전화 시대를 열었다.

문화재 등록 공고가 나가고 ETRI에서 TDX-1를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대전으로 달려갔지만 ETRI에 있는 제품은 TDX-1이 아니었다. 한참 뒤에 나온 TDX-10과 TDX-CPS인데, TDX-1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자신의 차를 보유하지 못 하고 있는 것처럼 정작 연구개발과 발표를 진행했던 ETRI에서도 1984년에 4월 25일 발표한 시범 제품은 물론이고 양산 제품조차 한 대 보관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TDX-1은 전국 전화국에 보급된 제품으로 아직 30년도 안 된 제품이다. 그런데도 실물 한 대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30년도 안 된 제품이면 문화재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최신제품에 가깝다. 그럼에도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것인데, 실물을 구하기 어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독일 경매업체 브레커에 의해 경매에 올라왔던 애플 1 컴퓨터의 경우 671,400 달러(한화 약 7억 5천만 원)에 최종 낙찰되었다. 1976년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200대 중 한 대로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에서 활동했던 전 야구선수 프레드 해트필드(Fred Hatfield)가 37년 동안 소장해 온 제품이라고 한다. 해외에서도 37년 밖에 안 된 애플1 컴퓨터가 몇 억 원의 가치를 가질 정도로 물건이 귀하다.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많은 IT 제품을 보존하는 일이 필요하다.

애플1의 경매가 보여준 것처럼 개인이 소장한 유물이나 개인의 일기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자산어보’, ‘열하일기’, ‘난중일기’, ‘북정록’, ‘광산노씨 장례일기’처럼 개인이나 한 문중의 기록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시대의 풍속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대한민국 IT사 100'이라는 책을 쓴 이유도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훗날 역사 기록의 작은 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다.

물론 지나간 과거보다는 다가올 미래가 중요하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올바른 미래를 위해 올바른 과거가 필요하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다. 과거 10년 동안 공부를 멀리 했다면 오늘날 좋은 자리에 있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10년 뒤 모습은 좋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면서 기억하는 개인이나 기관, 국가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에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보존, 바른 해석은 중요하다.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돌아보고, 현재를 다짐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법이다. 선진국일수록 박물관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에 공을 들인 아우디가 2011년에 드디어 130만대를 팔아 128만 대의 벤츠를 처음 추월하고 영업 이익 53억 유로, 영업 이익률 12.1%로 역대 신기록을 세운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봐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신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정성의 1%, 아니 0.1%만 투자해서 과거를 보존했으면 한다. IT문화재 등록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경험했으며 어떻게 IT산업과 문화를 위해 노력해왔는지 알려줌으로써 후배들이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를 덜 겪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가 어떤 말보다도 더 설득력 있게 많은 청소년에게 꿈을 심어주기도 한다. 내가 만나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현재 대한민국 IT 분야를 이끄는 많은 지도자들은 애플1이나 MSX로 컴퓨터를 시작했던 8비트키드다. 이들이 8비트 컴퓨터를 만지면서 IT에 대한 꿈을 키웠고 이들에 의해서 현재 대한민국 IT가 든든하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IT강국을 꿈꿀수록 과거의 IT에 대한 보존 정리는 더욱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정부기관 기업, 개인 별로 과거의 IT 유물과 기록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보존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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