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첫화면으로





ICQ에서 카카오톡까지 메신저의 역사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30827_sisa.html


메신저의 출발에서 카카오톡까지

시사저널 2013.08.27.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이스라엘 벤처신화의 씨앗이 된 ‘ICQ’

한국인이 스마트폰으로 하루 한 시간 하는 일이 카카오톡으로 지인과 소통하는 일이다. 카카오톡은 모바일인스턴트메신저(MIM=mobile instant messenger)의 한 종류로 PC용 메신저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세계 최초의 메신저 프로그램은 ICQ로 이스라엘의 미라빌리스(Mirabilis)에서 1996년 11월에 출시된 프로그램이다. ICQ는 "I Seek You"라는 의미로 사용된 이름으로 사용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친구들과 언제든지 대화가 가능해서 크게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다. 2001년에 인터넷 사용자 4명 중 1명이 ICQ 사용할 정도로 확산됐고, 국가, 성별, 연령별 사용자 검색과 파일 전송, 음성 전송, 노트등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ICQ가 미국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이유는 ICQ 제작 이유와 관련이 있다. 군대가 있는 이스라엘의 창업자들이 ICQ를 만든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군대에서 상관에게 들키지 않고 인터넷에서 대화를 하기 위해 ICQ를 만들었다. 친구와 대화를 위해 만든 이 프로그램은 1998년에 AOL에 4억 달러에 인수되면서 이스라엘 벤처 신화의 발판이 되었다. ICQ 창업자가 회사를 판 돈으로 이스라엘의 벤처산업에 투자를 해 수 많은 벤처가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과 2012년에만 다국적기업에 팔린 이스라엘 벤처기업이 117개, 금액은 130억달러(약 14조원)에 이를 정도로 이스라엘은 벤처왕국이다. 팔려나간 기업 말고 2012년 말 기준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벤처기업은 53개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유럽국가 전체인 51개보다 많은 숫자다.

ICQ가 인기를 끌자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도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시장은 세 업체의 주도하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한국에서도 1998년 디지토닷컴 `소프트메신저`를 내놓은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MSN메신저가 시장을 장악한다.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일반 국민이 인터넷을 집에서 쓰게된 시기는 2000년부터인데, MSN메신저는 윈도 운용체제 안에 포함되어 제공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운영체제인 윈도만 설치하면 MSN메신저도 자동적으로 깔렸다. 이러한 끼워팔기 형태를 통해 한국 시장은 MSN메신저가 독점하는 시장으로 바뀐다.

그러나 2003년에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이 출시되면서 시장은 급변한다. 윈도에 탑재된 MSN메신저는 누구도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네이트온이 MSN메신저를 이길 것이라 예상하지 못 했다. 네이트온이 난공불락이라 여겼던 MSN메신저를 누르고 국내 1위가 된 비결은 무료문자와 싸이월드 연동이다. 당시 1200만 명의 사용자를 지닌 MSN메신저를 따라잡으려면 킬러가 될만한 아이템이 필요했는데, SK컴즈는 이통사 계열사의 특징을 살려 무료문자라는 비밀병기를 내놓는다. 당시 문자메시지(SMS)는 학생과 젊은층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으나 학생들에게는 건 당 몇 십 원의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 문자를 100건이나 무료로 제공한다니 모두 네이트온을 깔기 시작했고, 대화할 버디리스트가 만들어지니 메신저로도 사용하게 된다. 무료문자 제공 이후에는 인기가 치솟는 싸이월드를 네이트온과 연동시키는 기능을 선보였다. 그렇게 해서 네이트온은 14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면서 2005년 3월, MSN메신저를 제치고 국내 1위에 오른다.

한국에서 MSN메신저를 넘어선 네이트온이 1위를 하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세계 1위의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중국의 텐센트라는 기업이 만든 QQ라는 메신저 서비스다. QQ는 7억 명이 넘게 사용하는 메신저로 최다 동시 접속자 1억 4540만 명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다. 텐센트는 스마트폰용 메신저가 인기를 끌자 QQ와 연동이 가능한 웨이신이라는 MIM 서비스를 내놓았는데, 2011년 1월 출시 이후 빠르게 성장하여 2년만인 2013년 1월에는 사용자 3억 명을 돌파했다. 웨이신은 위챗(wechat)으로 이름을 바꾸고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미 세계 최대 MIM으로 성장한 상황이다. 또한 텐센트는 우리나라의 카카오톡에 720억 원을 투자해 360만 주의 주식을 매집한 13.8%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MIM의 경우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1위를 하고 있는데, 회사가 망하기 직전에 탄생해 회사를 구한 서비스가 되었다. 한게임을 만들었던 김범수씨가 2006년 12월에 창업한 아이위랩를 만들고 '부루닷컴'과 '위지아'라는 서비스를 내놓지만 처참하게 실패한다. 회사를 접을 생각을 하던 그때에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접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카카오톡이다. 어떤 서비스가 좋을지 몰라서 14명인 직원을 네 명씩 세팀으로 나눈 뒤에 각 팀에게 하나의 주제를 할당해주었다. 그룹커뮤니티인 카카오아지트,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 마이크로블로그 카카오수다를 2010년 3월에 내놓는데, 카카오톡이 인기 있다고 판단되자 모든 팀원을 모아서 카카오톡 서비스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카카오아지트는 2010년 3월 이후로는 업그레이드가 없는 서비스가 되었고, 카카오수다는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카카오톡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선발주자인 왓츠앱을 비롯해 비슷한 기능을 가진 엠엔토크 등의 경쟁자가 있었다. 왓츠앱은 영어권 서비스 때문에 결국 한국 사용자의 증가에 한계를 보였고 엠엔토크는 300만 명의 회원이 넘어가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서비스의 장애가 문제로 드러나면서 이후 카카오톡의 독주가 시작된다.

카카오톡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다. 천재 개발자라 부르던 직원이 만든 부루닷컴과 위지아의 실패가 준 교훈은 천재 개발자보다는 사용자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 그래서 카카오톡이 나온 이후 만들어지는 기능과 개선사항의 99%는 사용자가 보낸 의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카카오톡은 한국 최고의 앱으로 시장을 독점한다.

2013년 7월 기준으로 카카오톡에 등록된 전화번호는 1억 개를 넘었다. 이 중 한국전화번호는 6700만 개, 하루 1개라도 메시지를 전송하는 사용자(UV)는 3천 만 명, 카톡 1인 당 120명의 친구가 등록된 상태다. 카카오톡 게임의 경우 게임시장 구조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드래곤플라이트의 경우 2천만 내려받기를 기록하는데 걸린 시간이 29일에 불과할 정도이며, 카카오톡 게임 매출은 2013년 상반기에만 3480억 원을 기록했다. 8개로 시작한 커머스도 1만 2천 개 상품으로 증가하는 등 카카오톡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한 예로 파리바케트와 제휴를 맺어 판매한 케익의 경우 단기간에 50만 개가 팔릴 정도다.

이스라엘의 한 청년이 친구와 대화를 위해 만든 메신저가 이스라엘 벤처신화의 기반이 되고, 세계 최대 SNS인 QQ와 위챗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한국에서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이동통신, 미디어, 게임, 쇼핑 등 각종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카카오톡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메신저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도구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다. 남은 것은 누가 메신저 시장의 지배자가 될 것이며, 과연 어떤 영역까지 메신저가 진출할 것이냐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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