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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젊은이가 시작한 한국의 인터넷영화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30911_sisa.html


14인의 젊은이가 시작한 한국의 인터넷영화

시사저널 2013.09.11.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영웅이야기’에서 ‘다찌마와 리’로, 한국인터넷영화의 역사

한국 최초의 인터넷영화는 14명의 젊은이에 의해 만들어졌다. 1995년 12월, 서강대 영문학과 2학년이던 이학준씨 주도로 14명이 모여 영화모임 ‘에클립스’를 만들고, 이학준씨는 감독이 되어 33분 짜리 ‘영웅이야기’를 제작한다. ‘영웅이야기’는 1996년 5월 27일에 서강대의 다산관에서 시사회를 가진 후 인터넷으로 개봉된다. 이학준 감독은 인터넷을 통해 독립 영화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배급망과 상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래를 내다본 그의 말은 나중에 현실이 되었다.

영화 제작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서울 소재 지방은행 지점장을 삼고초려 했고 지점장이 200만 원을 대출해주었다. 지점장이 담보로 잡은 담보물은 ‘젊음’이었다. 장비 역시 충무로를 수소문해 선배가 일하는 독립영화사를 찾아 8㎜용 3CCD 비디오카메라와 조명장비 등을 빌려서 시작했다. 영화의 완성도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들의 열정과 시대를 앞선 시도가 있었기에 한국에서 인터넷영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3년 뒤에 이학준 감독에 이어 새로운 시도를 한 감독이 등장한다. 한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인터랙티브 영화인 ‘영호프의 하루’가 1999년 4월 24일 개봉된 것이다. 조영호 감독은 통신회사의 광고에 '6mm'라는 ID로 등장해 국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여성감독이다. 1999년 4월 24일부터 네오무비를 통해 서비스된 ‘영호프의 하루’는 서비스 보름 만에 관람객 40만, 서비스 10개월 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영호프의 하루’ 관람객은 관람 도중 두 가지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이러한 3차례의 선택에 따라 모두 8가지의 다른 결말을 체험할 수 있다.

‘영호프의 하루’가 성공하자 조영호 감독은 1999년에 PPL 영화인 ‘밀레니엄살인행진곡’을 제작하고 이어서 2000년에는 네트워크영화 ‘여름이야기’를 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영호 감독을 소개할 때 영화감독이 아니라 ‘인터넷영화감독’으로 소개한다.

‘밀레니엄살인행진곡’의 경우 영화 속에 제품이 등장하는 단순한 PPL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감상하다가 필립스 또는 i2Phone의 상품이나 로고가 등장했을 때 클릭하면 영화 감상 중에 쇼핑몰로 직접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인터랙티브PPL영화다. 이후 모든 제작경비를 PPL 방식으로만 조달한 영화인 ‘아미지몽’이 2001년에 개봉한다. SBSi가 SBS 사이트에서 개봉한 ‘아미지몽’에서 아미 역을 맡은 배우는 고 ‘이은주’씨로 이은주씨 팬이 본다면 추억에 잠길 영화다. ‘밀레니엄살인행진곡’이나 ‘아미지몽’이 보여준 PPL 시도는 IT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오면 바로 구매가 가능한 영화가 등장할 예정인데, 필름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와 달리 인터넷영화는 인터랙티브한 동작이 가능하므로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초기의 인터랙티브영화는 낮은 화질과 생소한 방식으로 대중화되지 못 했으나 초고속통신망의 발달과 스마트폰, 스마트TV 시대의 도래로 다시 한 번 더 정교하게 제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로 IT와 영화의 융복합을 추구했던 인터넷영화가 일반국민에게 영화의 새로운 분야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초대형 히트작의 등장부터다. 바로 ‘다찌마와 리’의 등장이다. 2000년 12월 12일에 씨네포엠에 공개된 ‘다찌마와 리’는 ‘씨네포엠’의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된 세 편의 영화 중 한 편이다. 장진 감독이 만든 ‘극단적 하루’가 먼저 공개되고 이어서 김지운 감독의 ‘커밍아웃’, 세 번째로 ‘다찌마와 리’가 공개되었는데, 이중 ‘다찌마와 리’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인터넷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찌마와 리’는 상영시간 35분에 제작비는 6500만 원이 들었다. 일반적인 영화제작의 기준으로 본다면 극장에 걸 수도 없는 저예산 단편영화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나의 문화코드가 된다. 개봉 8일 만에 17만 관객을 모았고, 인터넷에서는 총 조회 수가 200만 건에 육박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임원희는 영화배우로 주목받게 되고, 류승완 감독 역시 상업영화 감독으로 재발견된다. 지금은 류승완 감독이나 장진 감독, 김지운 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는데, 이들이 인터넷영화라는 생소한 영역에 도전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영화가 더욱 다양한 토양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찌마와 리’는 영화제작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처럼 대자본에 의해 멋진 장편영화를 만들어야만 영화나 감독, 배우가 될 수 있다는 틀을 깼기 때문이다. 적은 자본과 무명 배우, 짧은 상영시간으로도 충분히 상업영화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인터넷영화라는 분야를 신인 감독과 배우들에게 열어준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영화가 헐리우드에 맞설 정도의 자생력을 갖고, 한류의 한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IT기술과 영화의 융복합을 시도했던 선구적인 영화인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과거의 영화산업이 배우와 감독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앞으로 영화산업은 IT에 상당부분 의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IT와 영화의 융복합을 시도했던 14명의 젊은이들부터 유명감독들의 도전의식으로 만들어온 한국인터넷영화의 역사가 미래 한국영화 발전의 발판이 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잡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