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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커의 전설에서 벤처의 전설로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31008_sisa.html


한국 해커의 전설에서 벤처의 전설로

시사저널 2013.10.08.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한국 최초로 구글에 벤처기업을 판 벤처의 전설이 된 노정석 대표

그는 도전장으로 받아들였다. 1996년 3월에 발생한 카이스트 시스템 침투사건에 대해 카이스트의 해킹 동아리 쿠스(KUS, Kaist Unix Students)의 회장인 노정석(20, 산업경영학과 3년)은 경쟁 동아리인 포항공대 플러스의 도전장으로 받아들였다. 두 학교의 해킹 동아리는 학교의 자존심이자 영웅이었기에 쿠스의 회장 노정석은 포항공대에 대한 보복을 결심한다.

운명의 날은 1996년 4월 5일로 정했다. 그와 두 명의 동료는 포항공대의 전산망에 침입해 학과 시스템의 전산 자료를 삭제하고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사건이 발견된 것은 해킹이 이루어진 다음날인 1996년 4월 6일로, 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 시스템관리자인 이종석 씨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자 당황한다. 더 놀라운 것은 해킹 수법이었다. 이전까지의 해킹이 단순 침입 또는 파일 빼내기 정도에 불과한 것과 달리 이번 사건은 모든 전산자료를 삭제해 학사 행정이 마비되는 상황이었다. 전자과 외에 물리학과 등에서 7개 시스템이 파괴되었다. 피해도 피해지만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앓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국 최대 해킹 사건은 익명의 제보로 시작된 검찰조사였고, 물증은 단 한 줄의 로그 기록이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일주일 뒤인 4월 12일, 익명의 제보가 정보범죄수사센터에 접수되면서부터다. 수사팀은 카이스트 내의 쿠스와 스팍스(SPARCS) 서버 시스템을 통해 침투한 흔적을 포착했다. 대전으로 내려간 검찰은 동아리 회원들을 상대로 1차 조사했지만 학생들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수사팀을 지휘했던 한봉조 검사는 양 쪽의 명예를 생각해 수색영장 없이 학교로 직접 방문해 사건을 수사했다. 학생들 사이의 해킹을 범죄로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노정석을 비롯한 두 동아리 회원은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팀은 이들의 과민반응에 심증은 가졌지만 물증이 없었다.

수사팀이 카이스트 전산시스템의 로그를 확인했으나 4월 5일에 아무런 사용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사팀은 당황했으나 결국 해커들이 로그파일을 삭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4월 29일에는 압수 수색영장을 들고 찾아갔다. 한봉조 검사가 다시 설득에 들어갔으나 노정석은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마치 ‘잡을 능력 있으면 잡아봐라’는 식이었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조용히 해결하려던 검찰의 관용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고 수사팀은 노정석 외에 3명을 동행해 귀경한 다음에 알리바이를 조사했다. 결국 학생들이 알리바이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학생들은 해킹에 대한 물적 증거를 제시하라면서 해킹 사실만큼은 계속 부인했다.

한봉조 검사는 엄청나게 화가 났지만 물증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수사팀이 철야에 들어가 로그를 다시 분석하기 시작한 지 3일이 지난 5월 2일 새벽. 마침내 4월 5일 해킹 시간대에 스팍스의 김세환 씨가 시스템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냈다.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에 비교되는 끈질긴 분석 끝에 미처 지워버리지 못한 단 한 줄의 로그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단 한 줄이었지만 사용 자체를 부인하던 학생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정석은 해킹을 시인하고 검찰은 노 씨와 조 씨를 구속했다. 쿠스와 플러스는 나중에 화해를 하면서 전쟁을 중단했지만 이 사건으로 쿠스가 해체되고 노정석은 카이스트 사상 초유의 재학생 구속 사태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해킹 사건의 주역으로 유치장 신세를 진 노정석은 영재들이 간다는 광주의 한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할 정도로 뛰어난 수재다. 그러나 컴퓨터 동아리에 들어간 후에 해킹 기술에 빠지면서 학교에서는 학사경고를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성적이 떨어졌다. 해킹 사건 다음 해인 1997년에 그는 보안업체인 인젠 창업에 참여해 이번에는 해커를 잡는 일을 시작했다. 인젠이 성공하면서 그는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변신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인 젠터스를 창업했으나 실패했고 SKT에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던 그는 2005년에 태터앤컴퍼니를 창업한다. 이 회사는 블로그 도구인 태터툴스와 티스토리를 개발했다. 서비스인 티스토리는 다음에 매각했다. 그리고 회사 태터앤컴퍼니는 2008년에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기업으로서는 두 번째로 구글에 매각되면서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후 그는 다시 벤처를 창업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의 벤처 인큐베이팅 기업인 '패스트트랙아시아' 창립에 관여해 벤처육성에 힘쓰는 벤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재능 있는 젊은이의 창업을 독려한다. 전설적인 해커에서 전설적인 벤처 전도사로 변신한 노정석의 ‘사회적 의무’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며, 그의 경험 나누기를 통해서 한국에 수 많은 벤처가 더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잡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