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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에서 구글로, 검색엔진의 명암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31127_sisa.html


야후에서 구글로, 검색엔진의 명암

시사저널 2013.11.27.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야후가 사지 않은 구글이 야후를 뛰어넘어

야후는 미국의 검색 사이트로, 인터넷기업으로는 가장 먼저 알려지고 성장한 기업이다. 야후의 창립자 제리 양(Jerry Yang)은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제리 어머니는 제리 양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제리 양은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 성적도 올 A+였다. 더구나 4년만에 학사는 물론 석사 과정까지 끝낼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야후의 또 다른 창립자인 데이빗 필로우는 제리를 가르친 조교다. 둘은 같은 과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제리 양은 데이빗의 끝없는 지식에 감탄한다. 그 지식의 원천이 어딘가 살펴보니 인터넷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극소수만 전문가만 사용하는 영역이었다. 제리 양은 데이빗에게 인터넷 사이트 가이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원래 제리 양이 이 작업을 제안한 이유는 인터넷 사이트 목록을 만들면서 데이빗이 자주 가는 사이트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둘은 인터넷 사이트 목록을 분류한 ‘제리양의 웹가이드(Jerry's Guide to the World Wide Web)’라는 사이트를 만들게 되는데, 이 사이트가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 결과 이 사이트 관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둘은 아예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또한 비지니스에 관한 개념도 없던 둘인지라 새로운 사람을 영입한다. 제리는 하버드대의 경영학과를 다니는 친구인 팀 브래디(Tim Brady)를 영입하고 얼마 후 5쪽 짜리 사업 계획서를 만든다.

그들은 여러 투자가를 만나지만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날 세콰이어 캐피탈(Sequoia Capital)이라는 벤처 캐피탈이 투자를 결정한다. 세콰이어 캐피탈은 실리콘 밸리 최고의 투자회사로, 애플 컴퓨터, 아타리, 시스코, 오라클 등의 세계 최고 기업이 이 회사 손을 통해 성장했다. 투자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 제리 양의 사업은 그야말로 황당했으며, 그들의 행색은 초라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열정에 감복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그 투자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야후는 최초로 성공한 인터넷기업이라는 역사를 쓴다.

야후라는 회사 이름은 소설에 등장에서 딴 이름이다. ‘걸리버여행기’를 보면 말이 지배하는 나라인 휴이넘(Houyhnhnm)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는 털이 수북한 인간처럼 생긴 야만인이자 말의 노예인 사람이 YAHOO다.
야후는 최초의 성공한 인터넷기업이 되었지만 미디어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업을 인수하고 검색에 소홀하면서 구글에게 검색시장을 내주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2008년에는 주당 30달러인 4백46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을 거부했는데 이후 실적이 나빠지면서 불과 몇 달만에 1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야후로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잡지 않음으로써 그나마 좋은 가격에 팔릴 기회를 놓친 셈이다. 결국 제리 양은 경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야후를 제치고 검색엔진 1위가 된 구글(google.com)은 2000년대에 가장 크게 성공한 미국 기업이 되었다. 구글의 역사는 신기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8월 19일에 상장된 구글은 상장 1년만에 미국 내 20대 기업에 든 최초의 기업, 1년만에 시가총액 천 억 달러(당시 약 100조원)를 달성한 최초의 기업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GE도 코카콜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아마존 어느 기업도 세우지 못 한 기록이고 앞으로도 쉽게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구글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라는 스탠포드의 학생 두 명이 학교 안 연구실에서 창업한 회사다.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구골(googol)을 회사 이름으로 쓰고 싶어 했다. 구골은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드 케스너가 만든 말로, 10의 100제곱을 뜻한다. 즉 매우 큰 숫자를 뜻하는 말로 웹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친구인 루카스 페레이라가 'google'이라고 오타를 냈다. 래리는 친구에게 철자가 틀렸다고 면박을 줬지만 듣기는 괜찮다며 숙고한다. 사실 이때 구골닷컴은 이미 등록된 상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google.com을 등록한다. 이때 두 사람이 구글의 탄생을 고민하던 빌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기증한 '게이츠 빌딩'이다. 빌 게이츠를 위협하는 구글이 게이츠 빌딩 안에서 탄생한 셈이다.

구글은 에릭 슈밋(Eric Emerson Schmidt)을 영입하면서 경영면에서도 탄탄해진다. 당시 노벨사 CEO였던 에릭 슈밋은 구글이라는 신생 벤처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벤처캐피탈의 존 도어에 떠밀려 구글에 합류했다. 이후 구글은 승승장구했고, 돈이 모인 후에는 인터넷을 만든 빈튼 서프(Vint Cerf)를 비롯하여 원조 유닉스 개발자인 롭 파이크(Rob Pike), AI 분야의 교과서인 피터 노르빅(Peter Norvig) 등 IT의 전설적 인물을 영입함으로써 더욱 탄탄해진다. 이런 전설적인 인물들이 한 명도 아니고 단체로 구글로 들어갔으니 이들 고수와 함께 일하고 싶은 인재도 구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야후를 제치고 검색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만, 야후는 구글을 살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구글의 창업주 두 사람은 신용카드대금도 갚아야 하고, 기숙사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야후, 인포시크와 같은 주요 포탈에 자신들의 검색 기술을 팔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글에 무관심했다. 지금은 사라진 인포시크의 설립자 스티브 커쉬는 “나는 그들에게 당장 꺼지라고 말했다”면서 당시 결정을 후회했다. 결국 둘은 직접 검색 사이트를 운영하기로 하고, 체리턴 교수의 도움으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립자인 앤디 벡톨샤임을 만난다. 교수 집 베란다에서 구글의 시연을 본 그는 수표를 써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둘이 5만 달러를 요구하자 “충분한 것 같지 않군요. 저는 그 금액의 2배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라면서 10만 달러를 즉석에서 지불했다.

회사 설립 후에는 야후에 검색엔진을 OEM으로 공급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야후가 품 안에서 호랑이새끼를 키운 셈이다. 야후에게는 구글을 살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결국 놓쳤고, 훗날 구글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되었다. 야후가 그때 구글을 샀더라면 IT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잡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