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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과 패러디문화의 확산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40312_parady.html


김어준과 패러디문화의 확산

2014.03.12.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딴지일보와 디시인사이드

패러디문화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매스미디어 시절에는 개인들의 패러디를 전파할 도구가 없었기에 개인 패러디문화가 미미했다. 개인 패러디문화가 시야 안으로 들어오고, 급속도로 확산된 시기는 PC통신과 인터넷의 보급부터다. 패러디라고 하는 것이 개인들의 간단한 댓글에도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소소한 것까지 따지면 PC통신 초기부터 존재했던 문화로 볼 수 있지만 사회문화 현상의 한 주류로 자리잡은 시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딴지일보’부터 본격적으로 패러디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7월 6일 창간된 딴지일보는 지금도 운영 중이며, 딴지일보 운영자인 김어준씨는 최근에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을 통해서 사회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국내 인터넷 패러디 1세대라로 부를 수 있는 딴지일보는 ‘각종 사회 비리에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는 장난스러운 창간선언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창간선언언문에서 이미 패러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름부터 딴지를 걸겠다는 딴지일보다. 이렇게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딴지를 목적으로 발행된 ‘딴지일보’는 1호가 등장하자마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세상을 뒤흔든다.

각종 패러디를 활용한 딴지일보의 신선한 충격은 딴지일보의 인기로 이어졌다. 딴지일보는 종이신문에서는 시도조차가 하기 어려운 각종 패러디로 인기를 끌면서 한 달 만에 2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20만 조회수면 인터넷 초창기로는 엄청난 조회수다. 더구나 1인 매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딴지일보라는 이름 때문에 여러 명이 근무하거나 기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딴지일보’는 김어준 씨를 발행인으로 한 일인매체로 출발했다. 물론 김어준씨는 자신을 자칭 "그룹총수"로 부르며 대기업을 거느리는 것처럼 그 자신을 패러디했다. 특히 1998년 대선에 관한 이회창과 김영삼의 뉴스 패러디 및 사진 패러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초기 독자층을 확보해 안정적인 운영을 시작한다.

딴지일보는 일반적인 용어와는 거리가 먼 낱말을 사용함으로써 딴지일보만의 독특한 문법을 만들어냈다. ‘여론조사: 예/아니오’를 ‘엽기투표: 그러췌/조까’라는 표현으로 바꾸는가 하면, ‘김데중’ ‘기명사미’ ‘리인재 비밀회동’ ‘대통령 주디를 공업용 미싱으로..’ ‘요술공주 쎄에리가’ ‘고소용 벗었다’ 등의 독특한 표현으로 1호에서부터 네티즌을 열광시켰다.

이처럼 딴지일보 발간 초기에는 주로 정치 및 언론에 관한 패러디 기사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이후에는 사회 문화로 넓혔으며, 특히 다른 곳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성담론에 이르기까지 패러디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2002년 6월 월드컵,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 사태와 관련한 ‘딴지일보’의 패러디 기사는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으며 인터넷 공간 곳곳에 퍼져나가기도 했다.

흩어져있던 소수 네티즌 패러디문화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딴지일보는 이후 인터넷 패러디문화의 원형을 제시하며 승승장구 한다. 딴지일보는 ‘딴지스’라고 부르는 독자층을 형성했고 이들은 다른 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딴지일보의 독특한 비판의식과 패러디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딴지일보의 성공 이후 패러디문화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스키조선’, ‘패러디한겨레21’, ‘수세미일보’, ‘보일아동’ 등의 패러디 사이트와 ‘대자보’, ‘더럽지’, ‘망치일보’ 등의 패러디 매체 창간으로 이어졌다.

딴지일보도 시간이 지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으나 위세가 하락 중이던 딴지일보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그 존재를 과시한다. 사실 딴지일보는 그 매체보다는 김어준이라는 1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매체다. 김어준씨는 여러 권의 책과 강연, 방송 진행을 통해서 자신의 패러디문화와 독설을 국민에게 전파했고, 김어준씨의 행보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것이다.

딴지일보의 패러디문학은 디시인사이드를 통해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고 디시인사이드를 통해서는 폐인문화 원형이 정착했다. 디시인사이드는 디카 정보 사이트로 시작했으나 갤러리에 올리는 사진을 통해 ‘합성’과 패러디의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킨다. 국내의 엽기 패러디 문화를 이끌면서 주요 화제를 패러디하고 네티즌문화를 대변하는 각종 유행어를 생산하는 기지로서 활동함으로써 2000년대 이후 한국 패러디문화 및 네티즌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사실 어지간한 인터넷 신조어는 디시인사이드를 통해서 만들어졌을 정도다. 국내 인터넷문화에 미친 영향을 따지면 딴지일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시인사이드가 압도적이다.

디시인사이드는 각종 ‘~녀’ ‘~사마’ 시리즈의 본산이자 ‘햏자’ ‘쵝오’ ‘횽아’ ‘방법’ ‘합성’ 등의 수많은 인터넷 속어의 탄생지가 되었다. 또 ‘응삼이’ ‘싱하’ ‘아시아프린스’ ‘소피티아’ 등의 합성 필수요소를 탄생시켰다. 특히 ‘폐인문화’라고 부르는 인터넷 마니아문화의 원형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에서 마니아문화가 인터넷으로 정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딴지일보가 등장하자 큰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 했지만 패러디방송도 생겼다. 딴지일보 생기고 약 1년 후인 1999년 말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패러디한 인터넷 방송 렛츠뮤직(letsmusic.com)의 ‘배칠수의 음악텐트’가 등장한다. 이 방송은 특히 2002년 3월 ‘엽기 DJ : F15 전투기편’으로 수 백만 네티즌을 사로잡았다. “어이, 조지 부시 자네가 팔려고 하는 그 F15인가 뭔가 하는 그 자전거 땜시 전화했는데 말이시, 머시라, 이 잡것이”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로 전투기 판매를 둘러싼 한미 관계를 유쾌히 풍자한 이 패러디는 다운로드 건수가 무려 1,000만에 달했다.

이후 사진 중심의 패러디는 동영상 사이트의 확산과 함께 일반적인 영역까지 확산되었다. 유튜브, 풀빵, 미디어몹을 비롯한 동영상 사이트에 각종 패러디 동영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PC통신 시절의 텍스트 패러디로 시작해 사진합성이라는 이미지 패러디로 확장되었던 패러디문화가 이제는 동영상을 비롯해 웹툰, 만화, 광고, 방송,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 상태다. 패러디문화 자체는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표현의 한 방법으로 넓게 활용되고 있는 일상의 패러디로 확산된 상태다.

패러디 문화가 확산되면서 패러디의 부작용도 증가했다.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와 사이버폭력이라는 두 주장 사이에서 줄을 타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패러디의 정도가 지나쳐서 인격모독과 사이버폭력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패러디작가를 구속하는 일도 생기고, 실제로 몇몇 사례의 경우 패러디 작품을 문제삼아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아 벌금을 낸 사례도 있다. 패러디는 일종의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촌철살인과 즐거움을 주고, 잘못 쓰면 폭력으로 둔갑한다. 때문에 패러디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생각 없이 하는 무분별한 패러디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패러디를 하더라도 누구나 공감이 갈만한 비유와 유머가 함께 포함된 건전한 패러디문화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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