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첫화면으로





웹 탄생 25주년, 팀 버너스 리의 오랜 열정의 결정체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40318_sisa.html


웹 탄생 25주년, 팀 버너스 리의 오랜 열정의 결정체

시사저널 2014.03.18.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웹은 팀 버너스 리의 오랜 열정으로 창안한 세계

하이퍼텍스트 구현을 위한 많은 학자들의 노력은 웹의 탄생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2014년은 웹이 탄생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다.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웹 탄생 25주년을 맞이해 직접 글을 작성해 올림으로써 웹탄생을 축하했다. 팀 버너스 리가 월드 와이드 웹의 기본개념을 공식 제안한 날은 1989년 3월 12일이다. CERN(Conseil Europeen pour la Recherche Nucleaire,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소에 근무하던 그는 웹을 창안하고, 1993년에는 CERN을 설득해 누구나 로열티를 내지 않고 평생 무료로 웹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후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웹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웹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웹은 팀 버너스 리의 오랜 열정으로 창안한 세계다. 그가 웹을 구상한 것은 CERN에서 근무하면서부터가 아니다. 팀 버너스 리가 웹을 구상한 것은 학생 시절부터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 내내 ‘정보의 연결’을 생각한다. 그는 1980년에 양성자 가속기 작업에 관해 계약을 하는데, 작업 도중 짬을 내 CERN 연구원과 그들의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인 ‘인콰이어(Enquire)’를 만들면서 머리 속에 구상하던 ‘정보의 연결’ 작업을 시도한다. 인콰이어는 요즘 브라우저의 원형 쯤 되는 프로그램으로 보면 된다. 1984년 9월에는 CERN에 정식 연구원으로 들어가 관련 프로그램을 작성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1984년 말부터 RPC를 만들고 다시 ‘인콰이어’를 만들며 머리 속 구상을 옮기는 작업을 시도하고, 1989년 3월에 웹의 개념을 담은 네트워크 보고서를 올린다. 그러나 처음 올린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는 웹을 개발하기 위해 로버트 카일리아우(Robert Cailliau)라는 네트워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990년에 네트워크 보고서를 다시 올리는데, 마침 넥스트에서 만든 컴퓨터인 'Next Cube'가 CERN에 들어오고 상사인 마이크 센달(Mike Sendall)의 도움으로 네트워크 실험에 대한 허락이 떨어진다.

그는 이름을 ‘세계적인 넓은 거미줄(world wide web)’로 결정하고 1990년 10월부터 웹 코딩을 시작해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문서와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 프로토콜, URI(Uniform Resource Identifier), 에디터 등을 만든다. 1990년 11월에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웹 브라우저)을 만들고 12월에는 브라우저로 HTML 문서를 연결한다. 역시 같은 달인 12월에 세계 최초의 웹주소인 'info.cern.ch'를 만들고 여러 시스템에서 'info.cern.ch'의 접속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웹시대를 열게 된다.

따라서 최초의 웹서버는 넥스트 컴퓨터가 된다. 웹에 처음으로 올라간 사진도 CERN과 관련된 사진으로 CERN 소속 직원으로 구성된 밴드인 ‘Les Horribles Cernettes’ 멤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사실 이 사진은 의도하지 않게 올라갔다. 팀 버너스 리가 이미지 등록 기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테스트용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이 밴드는 자신들도 모르게 웹으로 데뷔한 최초의 밴드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팀 버너스 리에 의해 점차 개발되면서 유용함이 눈에 드러나자 웹의 가치를 인정한 CERN에서는 대학생인 니콜라 펠로우(Nicola Pellow)를 인턴 연구원으로 붙여준다. 그녀는 1991년 8월까지 근무하면서 라인모드 브라우저를 개발한다.

이후 팀 버너스 리는 빠른 속도로 웹을 발전시킨다. 1991년 5월에 CERN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웹을 발표하고, 8월에는 뉴스그룹에 웹 도구 발표, 12월에는 미국의 텍사스주 산안토니오에서 열린 ‘하이퍼텍스트91 학술회의’에서 월드와이드웹에 대해 발표함으로써 웹이 점차 외부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1993년에 CERN에서 웹의 무료로 공표하고, 1994년 5월 25일 350명의 전문가가 모여 CERN의 강당에서 최초의 웹 회의가 열린다. 그해 10월에 미국 MIT 대학에서 W3C(World Wide Web Consortium)가 출발하면서 전세계는 본격적인 웹의 시대로 넘어간다.

이후 팀 버너스 리는 1998년에 차세대 웹으로 시맨틱웹(Semantic Web)을 제시함으로써 웹을 기계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시맨틱웹은 아직도 구현까지 갈 길이 먼 상태다. 최근에는 IoT( 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이 부각되면서 웹이 온라인 공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통신수단으로 활용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사물인터넷은 사람이 아닌 제품을 인터넷에 연결해 활용하는 기술로 구글글래스, 구글스마트콘택트렌즈, 스마트워치, 나이키밴드와 같은 웨어러블컴퓨터도 IoT의 한 사례다. 칩이 더 소형화된다면 거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게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게 되는 화장실의 거울과 칫솔부터 잠자리에 들 때 사용하는 침대와 침대의 베개까지 인터넷에 연결되게 된다. 인터넷에 연결된 베개는 수면을 관리하거나 연인끼리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웹은 사람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클릭하는 단계에서 더 확장되어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기능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팀 버너스 리에 의한 웹 탄생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웹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으로 며칠만에 뚝딱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늘 ‘정보의 연결’을 생각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한 팀 버너스 리의 오랜 열정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인콰이어’ 프로그램부터 따져도 십 년, 젊은 시절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 웹이다. 우리는 웹이 나오기 전까지 하이퍼링크를 연구한 수 많은 사람이 있었고, 젊은 시절을 바쳐서 웹을 연구한 팀 버너스 리와 같은 열정적인 학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팀 버너스 리에 의하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은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상태에서 서로의 자료를 공개하고 이렇게 공개된 자료를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단지 URL의 우주에 하이퍼텍스트라는 교통수단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겸손의 말을 하면서 ‘인터넷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이 영광을 함께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의 노력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동감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지식을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좀더 나은 문화생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팀 버너스 리는 웹 탄생 25주년 축사에서 아직도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60%의 사람들이 온라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새로운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연결의 개방기준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웹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를 원하는데, webat25.org 사이트를 방문하면 그의 고민과 웹의 미래에 대해서 알아보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

잡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