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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코리아의 역사와 미래

IT문화원칼럼. URL: http://ith.kr/column/20150101_i815.html


IT코리아의 역사와 미래

독립기념관. 2015.01.01.

- 김중태 (IT문화원 원장)


한국이 인프라 하드웨어 등에서 IT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환경적 요소가 영향을 끼쳤으나 크게 두 가지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정부의 IT정책 추진이고 두 번째는 정부의 IT정책을 따라갈 수 있는 인재들의 출현이다. 지금은 전 국민이 초고속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는 공짜로 얻은 행운이나 남에게 받은 선물이 아니다. IT는 고사하고 기본 산업조차 없는 시기부터 IT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력한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풍요로운 IT 세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967년에 과기처와 KIST 전산실, 한국전자계산소를 설립하면서 한국의 IT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KIST 전산실은 OJT(Onthe Job Training)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래밍 교육 시스템을 운영했다. KIST를 통해 배출된 인력은 1만여 명이 넘었고, 이들은 한국 IT산업의 중추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IT인력의 바탕이 되는 각종 기관 설립을 주도하고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노력한 주체가 한국 정부다.

KIST 초대 전산실장을 맡은 성기수 박사는 하버드 역사상 최초로 2년 만에 학위를 획득한 대단한 수재요, 최고의 과학자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이런 우수한 인재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치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해외에서 고액을 받던 과학자와 교수들은 한국정부가 제시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월급을 받으면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제1세대 해외 유치 과학자'다. 이들이 한국 IT산업을 이끈 원동력이자 한국을 IT강국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한국 IT산업을 주도한 정부정책과 이 정책을 실행할 수 있도록 노력한 많은 인재들이 한국의 IT산업의 발전이라는 결실을 이끈 것이다.

한국 정보통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쾌거로 손꼽히는 완전자동전자교환기(TDX) 개발에서도 정부와 인재들의 손발이 잘 맞았다. 전화 수요는 늘지만 제때 공급하지 못해서 전화 가격이 집 한 채 가격까지 오르면서 정보통신의 병목현상이 생길 때인 1981년 10월에 정부는 TDX 개발을 결정한다. 정부의 투자금액은 240억 원으로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다. 그리고 국내 기술진에 의해 국내 최초의 전자교환기인 TDX-1을 1984년 4월 25일 개발함으로써 한국정보통신의 역사에서 최초라 불러도 손색없는 정보통신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TDX 개발 경험에서 축적된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CDMA 상용화 및 오늘날 한국 IT의 주력 수출품인 휴대전화 시장 개척이 가능했다.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강국으로 떠오른 바탕에도 한국의 우수한 인재와 정부의 정책이 맞물려 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연구하던 전길남 박사는 박정희 정부의 해외과학자유치사업에 의해 1979년 2월에 입국해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 시스템 개발 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2년 뒤에 TCP/IP 프로토콜을 쓰고 텔넷으로 연결된 SDN을 탄생시킴으로써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인터넷국가로 한국을 등록시킨 것이다.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초고속통신망 보급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사업의 전개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IT코리아의 힘을 뒷받침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충분하게 배출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한글’이다. 일본이나 중국은 '검색(檢索), 경제(經濟)'와 같은 용어들이 한자로 표기되기 때문에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실력이 떨어지는 중고생조차 어른 신문을 볼 수 없다. 어려운 한자낱말이라 검색어 입력조차 어렵다. 낱말 철자를 따로 외워야하는 영어권에서도 초등학생이 워싱턴포스트지를 읽기는 어렵다. 반면 유치원 때부터 한글 읽기가 가능한 한국은 어려서부터 포탈뉴스를 통해 영화평을 보고 경제소식을 접한다. 때문에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몇 년 앞서서 높은 수준의 경제적 문화적 식견을 쌓게 되고, 이러한 깊은 문화적 식견이 한류열풍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글이라는 장점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보다 좀더 깊은 문화적 역량을 지닌 우수한 인재들에 의해 계속 지속될 현상이다.

IT코리아도 계속될 것이다. 한글은 정보화시대에서 더욱 빛나는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한자를 입력하기 위해서 애를 먹는다. 반면 한글은 1분에 600타에서 1천타까지 타자 입력이 가능할 정도다. 이에 대해 한글기계화의 선구자인 공병우 박사님은 ‘문자를 지배하는 민족은 세계를 지배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빠른 문자 입력이 가능한 공병우식 한글타자기를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고성능무기’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글은 존재할 것이기에, 한류 열풍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IT산업도 여전히 희망적인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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